Yeom Ji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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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신원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_낯선 공간, 역할의 빈틈을 찾는 일_2019 2020-02-02

낯선 공간, 역할의 빈틈을 찾는 일

 

 

황신원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작가 염지희는 낯선 공간 속으로 들어가기를 즐긴다. 이 공간은 입구도 출구도 없고, 어둠과 빛도 구분되지 않는다. 어디로부터 유리된듯한 풍경이 화면 한가운데를 떠다닌다. 표정을 알 수 없는 등장인물들은 시선을 회피한다. 은밀한 기억이나 경험, 상상을 자극하는 그녀의 심리적 풍경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독특한 은유와 상징적 모티브가 다양하게 등장하는 화면은 마치 또 다른 세계를 안내하는 통로와 같다. 생경한 장면을 마주하게 된 관람자는 작가 내면에 잠재된 심리와 창작의 근원에 호기심을 지닌 채 기이한 풍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예술작업은 남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과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예술은 경험이나 직관, 감각, 상상 등 다양한 요소를 기반으로, 인간으로서의 나 그리고 내가 사는 이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과 답변일 것이다. 염지희 작가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가 가능한 그리스 신화, 그리고 시 - 장 뤽 낭시 Jean Luc Nancy<코르푸스 Corpus>, 정영효의 <계속 열리는 믿음>, 체사레 파베세 Cesare Pavese <냉담의 시 Poesie del disamore> - 와 같은 문학적 텍스트를 통해 받은 영감으로, 문자가 지닌 한계를 뛰어넘는 이미지와 공간을 창조한다. 텍스트를 독해하고 음미하고 해체하면서 작가는 텍스트가 지닌 여러 가지 의미들을 시각적으로 형상화시킬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나간다. 작품 제목뿐만 아니라 작품 내용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텍스트는 낯선 이미지와 조응하며 독창하고 섬세한 뉘앙스로 변모된다. 심상을 촉발시키는 문학적 텍스트를 탐미하고 발견해 나가는 과정은 작가에게 창작의 의미를 발생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행위이다.

 

 

의미의 발생뿐만 아니라 상징적 의미가 구축되는 방식을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다. 콜라주는 무엇이든, 어떻게든, 유연하게 서로 연결되고 담아낼 수 있는 조형적 태도이다. 이를 통해 이질적이고 낯선 것들을 결합함으로써 물리적심리적 공간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고정관념을 벗고 사물에 대한 직관을 뒤쫓아 폭넓은 사고와 인식의 틀을 경험하게 한다. 먼저 작가는 버려진 사물의 외면과 그 대상을 인식하는 작가의 내면이 교차하는 접점을 찾는다. 그 잔영을 작업의 맥락으로 끌어옴으로써, 작업은 다층적 의미를 지니게 되고, 다양한 매체로 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하게 된다. 동시에 상이한 맥락에서 조합된 오브제 사이의

긴장감은 모호한 내러티브와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접붙임의 행위는 관점을 전환하는 방식으로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새롭게 제시함으로써 평범하고 익숙하게 우리를 규정지어 온 것들의 존재를 일깨운다. 어떤 현상과 사물의 의미를 바라보는 고정관념, 세상을 관조하는 사고방식의 틀을 인식시켜 새로운 맥락으로 그 경계 바깥에서 내부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콜라주된 사진 이미지나 오브제는 시간과 기억을 연결시키는 매개가 된다. 사진 속 그곳, 오브제가 발견되었던 장소의 실체는 이미 또는 언젠가 사라지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떨어져 나온 이미지와 오브제는 콜라주의 과정을 거치며 영속성을 지닌다. 여기에 기억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더하는 행위이다. 기억은 고통, 슬픔, 기쁨, 희망의 감정이 축적된 시간과, 무수한 감정의 파편이 녹아 있는 장소를 넘나드는 특별한 창작의 통로이다. 그래서 염지희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평면에서 입체(설치), 더 나아가 움직임(퍼포먼스)으로 시간과 공간을 확장해 나간다. 폐허와 같은 특정 장소에서 물질과 행위, 경험적인 에피소드가 덧붙여지면서 한편의 드라마는 완성된다. 이제 과거의 불안과 상처, 긴장을 응시하며 현재와 미래를 구체적인 에피소드와 장면으로 기술한다. 가상의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제거되고 현실 공간과 대상, 그것들의 몸짓으로 연극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인간의 두 눈은 각기 다른 지점을 직시하지만 하나의 이미지로 상을 만들고 인식한다. 작가 염지희는 어느 한곳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립적인 시선으로, 평정의 감각으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고자 한다. 흑과 백의 이분법적인 시각이나 개념으로 구분되어 왔던 삶과 죽음, 몸과 정신, 감성적인 직관과 이성적인 논리,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비이성, 꿈과 현실, 등 이 모든 대립적 요소들의 경계를 허물고 그 양가적 가치 안의 모순과 역설을 드러내고자 한다. 하나의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기에, 빈 곳을 찾아 계속 질문하는 자로서의 역할이 예술가에게 부여된다. 그것이 염지희의 창작이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에는 인간의 삶과 본성에 대한 사유의 깊이가 담겨있고, 혼돈과 모순의 현실 속에서 더 깊은 진실을 밝히고 세상이 돌아가는 기본 질서를 드러내려는 희망을 내비친다. 무수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작가는 가장 많은 성장과 깨달음을 스스로의 작업을 통해 얻고 있는 듯하다.

 

 

염지희의 작업은 상상을 통해 살아 흐르는 것,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 보다 열린 세계를 갈구하는 행위이자 끝없는 자유로운 몸짓이다. 역설적이면서 모순적인 요소들을 응시하고 투영할 수 있는 정신적 힘의 근원은 이분할 수 없는 예술 세계와 예술가로서의 자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현실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곧 예술이고, 예술가로서 를 일깨우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사유와 상상이 텍스트와 이미지,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넘나들며 빈 곳을 찾아 어디로든 유유히 자유롭게 흘러나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