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Seen The Future


나는 미래를 보았다.

“우리는 미래를 보았습니다”

박람회의 눈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엿보거나 장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내일을 준비하는 오늘의 시각을 새로운 방식으로 명확히 제시하려는 것입니다. 오늘을 확실히 아는 것이 미래에 대한 가장 좋은 준비입니다. -뉴욕세계박람회 서문(1939)-

1939년 뉴욕세계박람회는 대공황의 끝자락에서 개최되었으며 ‘미래’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전시명인 ‘나는 미래를 보았다(I HAVE SEEN THE FUTURE)는 뉴욕세계박람회에서 사용된 문구로, 미래를 지금 현재에서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연결짓고 있다.
미래라는 ‘시간’은 어떻게 현재에 존재할 수 있을까. 미래를 보는 자는 누구이며, 미래는 어떻게 보여지는 것인가. 참여작가 김성배(사운드), 목진우(사진), 염지희(연출, 미술), 서영주“(퍼포먼스)는 미래에 타임라인을 만들어 시각화하는 협업을 시도한다.
미래를 마주하는 ‘나’는 누구인가, 불규칙한 노이즈에서 멜로디를 찾는 자일 것이다. 예언적인 ‘미래를’찾는다면 그것은 영원하지 않는 낙서를 속에 있다. 우리는 이미 미래를 ‘보았다’. 현재와 구별할 수 없을 만큼의 미시적인 차이 속에서.

VIDEO & MESSAGE _ Mok Jinwoo (목진우. 사진-영상)

전시의 최초기획과 전시명은 목진우가 수집한 텍스트, 'I HAVE SEEN THE FUTURE‘에서 출발한다.
목진우는 여행을 하며 촬영하고 수집해온 그래피티나 스티커아트의 텍스트에서 예언자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길거리의 낙서들처럼 출처 없는 무명의 목소리들은 불현 듯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메시지가 된다.
그는 본인의 경험에서 채집된 텍스트들을 재구성하여 볼드체의 텍스트로 재생산한다. 마치 예언하듯 강렬한 이미지의 텍스트들은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뚜렷한 실체가 없는 미래를 이야기한다.


PERFORMENCE FROM _ Seo Youngjoo (서영주, 퍼포먼스)

서영주는 ‘미래’를 모든 회귀하는 시간들의 미시적인 차이에서 발견한다.
직선으로 쓰여진 ‘나는 미래를 보았다’를 마치 둥글게 구부리듯, ‘나는-미래를/ 미래를-보았다/ 보았다-나는’으로 회귀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꼬리를 잇는 3개의 주제에 성경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를 더해 이미지-퍼포먼스로 풀어냈다. 1. 나는 미래가 되기 위해 창조물인 태아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것은 하나에서 분열되고 분열을 통해 다시 하나가 된 것이다.
2. 회개하여 미래를 원하던 자들은 옷을 찢고 검은 재를 뒤집어씀으로써 다시 태어났다.
3. 나는 보았다고 광야에서 외친다. 그 목소리는 아주 먼 곳에서 힘을 가질 것이다.


SOUND FROM _ Kim Sungbae (김성배, 더블베이스-사운드)
김성배는 미래를 본다는 것을 흩어진 파편의 시간들 속에서 주관적 시간의 이미지를 찾아가는 행위로 해석한다.
그는 아티스트 해오(HEO)의 전자음이 만들어내는 노이즈 속에서 더블베이스 즉흥연주로 불가능성을 넘는 멜로디를 찾아나간다.
DIRECTING FROM _ Yeom Jihee (염지희, 기획-연출-미술)

염지희는 사진-영상, 사운드, 퍼포먼스의 협업을 통해 ‘현재 속의 미래’, 미래에 타임라인을 구축하는 시도를 한다.
제목인 ‘나는/ 미래를/ 보았다’를 분절하여 미래를 보는 ‘나’ 누구이고, 보이는 ‘미래’는 무엇이며, 미래를 어떻게 ‘보고’, ‘보았다’라고 말해질 수 있는 것인가를 질문한다.
이로써 실체 없는 ‘미래’를 ‘현재’로 불러와 증언하는 이 문장을 통해 가시화된 미래와 가능성을 묻는다.

참여작가들에게 ‘나는 미래를 보았다’라는 테마만 제시했을뿐, 본인이 표현해야 만하는 미래의 이미지를 이야기하도록 하였다.
다른 참여작가와의 간섭도 최소화하였으며, 개별성을 구축하고 그저 하나의 장소에 모일 수 있도록 하였다. 발표장소는 퍼포머의 무대이자, 상영관이며, 공연장이 될 수 있도록 바닥을 정리할 뿐이었다.
다만 거울이 있는 공간의 특징을 활용하여 영상이 거울에 반사되어 반대편 벽에 비춰지고, 거울에 투영된 이미지와 실체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추가적으로 주문했다.
그리고 퍼포머들은 염지희의 콜라주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이미지)에서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냈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동작들을 구성했다.
(얼굴을 감춘 사람, 다리, 팔등 신체의 일부만 드러내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 머리를 쳐박은 동물, 검은 물을 바라보는 사람)

공연당일 즉흥성을 기반으로 각각의 장르가 합을 이루도록 하였고 공연을 통해 다른 작가의 이야기를 체감하도록 하였다.
우리가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고 말한 것은 없었다. 각자 다른 사람의 미래를 바탕으로 하여 나의 미래를 이야기해야했다.

객석은 두 개로 나뉘어졌고, 관객은 두 개 이상의 화면-사운드-퍼포먼스를 관람해야했다.
동시에 연주되는 결이 다른 사운드가 부딪히거나 멜로디를 만들어지듯, 두 명의 퍼모머는 두 개의 미래가 되어 함께 혹은 다르게 태어나, 뒤엉켜 만나고 다시 분리되어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양한 채널의 화면은 각기 다른 이미지를 상영하면서 퍼포머의 움직임에 따라 왜곡되거나 퍼포머의 그림자로 지워졌다.
관객들은 본인이 착석한 위치나 시선의 선택에 따라 모두 다른 이미지와 이야기를 포착해야했다. 벽면의 거울로 인해 반전된 이미지나 심지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아야했다.
염지희는 목진우의 낙서사진들, 텍스트 영상 속에 몇몇 이미지들을 삽입하였다.
출처가 있거나 본인이 촬영한 낮은 화소의 사진들을 확대한 것들이다. 출처가 있는 이미지는 거의 그 출처를 찾을 수 없고, 일상 속에서 촬영된 사진들은 본래 그 사진이 갖는 시간과 공간을 잃었다.
낮은 화소의 확대된 이미지들은 고해상도의 빔프로젝터로 상영되어 회화적인 텍스쳐만 남은 이미지들이 되었다. 이미지들 중에서는 달의 실제 뒤편과 달의 뒤편을 염사한 것이 있다.
이것은 달의 뒤편이 촬영되기 전에 일본의 초능력자가 염사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초능력자의 생각이 인화지에 남겨진 것이다. 달의 뒤편이 드러나기 전까지 초능력자들의 커다란 이슈는 달의 뒤편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지의 영역을 주관적인 시각으로 구축하여 그리는 것. 그것이 미래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보았다. 우리 속에 미지로 남아있는 수많은 ‘나’는 어떤 미래를 보았을까.